[심리] 내 맘 여행

[완벽주의 타파] “돼야 된다”의 감옥

그리니 Greene 2024. 12. 3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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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띄고 있는데 나같은 경우는 “돼야 된다”, “해야 된다”라고 끊임 없이 자신에게 얘기한다.

마치 “되어야 된다”의 감옥에 빠져 사는 것 같달까?

이러한 종용하는 주체를어려운 말로 “초자아”라고 하기도 하는데, 내안의 감시자, 비판자 인 것이다.

이렇게 쓰면 좀 무섭게 들리지만, 사실 이러한 초자아는 누구에게나 있다.

정도의 차이일뿐.

초자아가 잔소리를 해서 우리가 공부하고 해야할 일을 하고 착해지려하고 좀 더 나아진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양심도 초자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귀엽게 표현 해서 잔소리 인거지, 이게 만약 심해지면  잔소리가 아니라 “너는 이것이 틀렸어”. “너는 이렇게 해야 해”. “그래서 너는 이런 사람이 돼야 돼.” 라는 목소리를 끊임 없이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강박인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더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나아진 나를 사랑할까? 혹은 더 나아진 나는 삶이 더 행복할까?

나의 대답은 ‘NO’이다

조그만 잔소리쟁이 정도는 어쩌면 나에게 더 유익 할 수 있다.

“너 거짓말 하면 안돼!“라고 종알종알 댈 때, ”음? 역시 그런가?”하고 따르거나 “아..아니 이상황은 그래도 하얀 거짓말이니까 이게 맞지 않나?”라고 무시도 하면서 좀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좋던 나쁘던 그 행동의 결과에서 배우고 성장한다면 말이다. (건전한 완벽주의가 이런 모습 아닌가 싶다.)

그런데, 잔소리쟁이가 아니라 “되어야 된다”의 감옥의 간수 라면 어떨까?

“이렇게 안하면 사람들이 모두 너를 싫어할꺼야!” “이렇게 안하면 너는 최악의 인간이야!” 라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말로 채찍질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완벽주의로부터 탈피 하는 것은 “이렇게 되어야 된다.” 라고 생각하는 그 감옥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의 간수는 굉장히 세고 점점 몸집을 불려가는 것 같다. 성인이 될 수록 보이는 것도 많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겁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제 용기를 내서 그 감옥에서 나오려고 한다. 조금 말이 너무 판타지스러운 가? ㅎㅎㅎ

(여담이지만 사실 블로그 이름을 ‘기쁨 도서관’으로 지은 이유는 그냥 이 감옥에서 벗어나면 기쁠것 같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해서이다. (단순 ㅋㅋ) 예전에 미녀와 야수 애니매이션을 기억하는 사람은 야수의 그 멋진 도서관을 알 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 그런 기쁨으로 가득 채워진 그런 도서관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내 도서관을 갖고 싶기도 하고. ㅎㅎ)

각설하고, 완벽주의는여러 가지 자기 치료 혹은 자기 연습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내가 읽은 책들은 그렇다고 쓰여져 있다. (내말 아님 전문가 말임 ㅋㅋ)

그중에서 내가 많이 도움을 받은 것을 인지행동치료이다.

이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계속 다뤄볼 예정인데, 일단 내 목표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인지행동치료를 일기 삼아 블로그에 적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다 다를 수 있는데, 일단 내가 하려는 방법은

  1. 나에게 드는 생각,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을 적어 보기
  2. 그 생각이맞는 생각인지, 왜곡된 생각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보기
  3. 잘못 생각하지 않고 좀 더 정확한 시각으로 바라 보기


예를들자면 이런 것이다:

  1. 내가 같이 얘기해주는 사람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나를 싫어할꺼야. 그러면 나는 너무 창피하고 괴로울꺼야.
  2. 내가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고 이사람이 정말 나를 싫어할까? 나도 너무 뻔하게 나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오히려 더 싫지 않나? 또한, 내가 비위를 맞춰줘서 이사람의 호감을 산다고 해도 그것을 진정한 좋은 관계라고 생각 할 수 있을까? 나는 만족감을 얻을까? 그리고 이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창피하고 괴로울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 할 수 없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3. 내 옆에 사람에게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 비결 일거야. 만약에 내가 솔직 했는데도 이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쩔 수 없어. 모두가 나를 좋아 할 수는 없고, 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는 걸.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거나 내가 창피해할 필요는 없어.


이렇게 내면의 생각을 내보이는 거 자체로 나에게는 큰용기이다.

이 블로그를 쓸 때도 “좀 더 완벽하게 써야 돼,” “남들이 읽기 쉽게 혹은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보이지 말고 써야돼” 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전에도 썼다시피 이 블로그를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완벽주의 탈피 과정 중의 하나이다.

미숙하고 틀린 부분도 많겠지만, 그래도 일단 이렇게 미완성인 혹은 미숙한 그 자체로 세상에 내 보이고자 한다. 일종의 둔감 치료 라고나 할까?

나는 완벽주의자 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나답게 살기로 했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서 정말 나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떨 때 기쁘게 느끼는지를 알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혹시 아직 자기 완벽주의인지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안다. 나의 좌충우돌 여정이 말이다.

그러면 오늘도우리 완벽 하지 못한 인생을 기쁘게 살아 보자!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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