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퇴사한지 두달 정도 되어간다
나는 꽤나 활동적이 었던 사람이므로 (“었던”에 주의)
퇴사를 하고 나면 운동, 독서, 공부, 여행, 자연과 가까이 하기, 몸에 좋은 요리하기, 사람들 만나기 등
그간 미뤄왔던 여러가지 일들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왠걸…
번아웃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지난 2달 동안 나는 거의 한게 없다.
아니 사실 여러가지를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 만큼 무언갈 하지 못하고
사실상 집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나의 하루 일과를 돌이켜 보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겨우겨우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간장 계란 밥이라던지)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좀 하다가
오후 쯤 정신을 차리고 무언갈 해야지 라는 생각에 위에 적은 활동중 아주 작은 버전을 조금 하다가 (집앞 산책정도)
기가 빨린 느낌에 집에 들어와서 또 아침의 행동을 반복…
이런 느낌이다.
첫달은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 두달이 다 되어 가니까 기가 막히기도 하고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싶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 같은데
변명을 하자면, 그래도 가아끔 무엇을 배우러 나가고, 가아끔 인터넷 강의도 듣고, 가아끔 독서도 하고, 가아끔 헬수나 산책을 한다.
그런데.. 나의 원래 에너지가 100이라면 이것들은 지금 20%밖에 안되는 에너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매일의 루틴으로 오전에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어떤 것이던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사람을 만나고, 밤에는 여행계획을 짜느라 검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루틴대로 사는게 나에게 정상인데..
사실상 이러한 루틴 2일치를 일주일에 나눠서 하는 느낌?
…일단 나에겐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재화였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너무 현타가 왔다.
갑자기 자신이 너무 쓸모 없어지고 대체 내가 왜이러지 싶고, 자괴감이 밀려들어와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그것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친구의 말로는.. 그렇게 힘들어서 퇴사를 결심했으면서. 너는 또 너를 닥달하는구나. 지금은 쉴 시기야. 라고 말을 해주었다.
쉰다는 것은 그렇게 뒹굴뒹굴대는거야. 라고.
그 말을 듣고보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번아웃이란 내 안의 모든 것이 타버려 완전히 소진된 것을 의미하는데
아, 그렇구나. 지금 내가 뭔가를 태울게 남아있지 않구나.
그래서 지금은 충전시기이구나.
자꾸 말라버린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하니 잘 되지가 않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하는데, 라고 생각은 하지만 몸과 마음이 내 마음처럼 안 움직여지는 것
그래서 내 사전에 없던 미루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 안해도 되는건 하지 말자라는 포기를 하게 되는 것.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 당황했는데 그것이 번아웃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나.
친구 말로는 그래도 한달 전보다는 지금의 얼굴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표정이 다양해 졌고훨씬 안정되었다고 한다.
나는 변화를 못느끼지만, 내안에서는 그래도 조금씩 무언가가 채워져 가고 있었나보다.
쉬더라도 “잘” 쉬어야 한다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뭔가 다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친구가 “그건 쉬는게 아니지” 라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예전에 쉰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쉬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나는 나에게 쉼을 주지 않아서 이렇게 소진되었구나.
그럼 이번에는 좀 잘 쉬어보자.
여전히 나는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빈둥빈둥 거리는 것이 건강한 쉼의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진되었을 때에는.. 그러한 것도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유투브나 게임산업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나서 조금 충전이 되면, 그래도 조금 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강한 쉼을 준비하거나 할 수 있게되고,
더 충전이 되면,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 앞으로의 준비를 하고,
더 충전이 되면 다시 활발한 성인으로서의 생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지금은 레벨 1 쉬는 사람 이랄까?
레벨 1에 맞는 활동들을 하며,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지 말고
레벨이 높아지고 만렙이되면
이제 쉬는 것을 졸업하고 다시 생기 있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만약 혹시 번아웃으로 퇴사를 준비하거 한 사람이 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퇴사하고 바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상당기간 소진되어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다고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퇴사를 결정 혹은 준비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나도 몰랐다. 내가 쉬며 진짜 아무것도 못할 줄은.
처음엔 너무 당황하고 한심하고 속상했는데
이제는 내가 정말 온힘을 다해 일했고 정말 다 태울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안아 주기로 했다.
나는 믿는다 곧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생기겠지.
일단은 지금은 좀 마음이 하자는대로 해보자.
몇년동안 하자는대로 하기는 커녕 무시하고 머리가 시키는 대로 살아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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